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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김용호 열사’ 추모···‘잊혀진 민주역사’

호민관 2022. 3. 14. 00:19

여수 ‘김용호 열사’ 추모···‘잊혀진 민주역사’

자유당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항거

승인 2022.03.10 17:25:31 | 김형규 기자 | 105khk@hanmail.net

 

- 시민감동연구소 한창진 대표 “민주주의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

 

이승만 정권의 3·15부정선거에 항거하다 괴한의 피습으로 목숨을 잃은 故 김용호 민주열사를 기리는 추모식이 9일 여수시 교동 사건현장(옛 민주당사)에서 개최됐다.

 

‘민주주의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라는 시대정신으로 열린 ‘故 김용호 민주열사 62주기 추모식’은 뜻있는 시민들과 유족대표의 참여로 여수 시민감동연구소가 주최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1952년 부산 정치파동을 일으켜 12년 동안 집권하면서 1960년 3월 15일 제4대 대통령선거에서 3·15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민주화 도시 여수에서도 당시 조광범 여수경찰서장이 나서서 부정선거를 지휘하고 깡패를 동원해 야당 선거운동원을 테러하는 살인사건도 서슴지 않았다.

 

1960년 3월 9일 오후 7시 30분 여수시 교동 동성극장 모퉁이 건물에서 부정선거 규탄 행사를 준비하던 민주당 김용호(33) 문화부장과 김봉채(46) 선전부장이 갑자기 나타난 10여 명의 괴한들로부터 쇠뭉치와 곤봉 등으로 후두부와 얼굴을 가격당해 쓰러졌다.

 

▲여수 시민감동연구소 한창진 대표가 9일 열린 ‘故 김용호 민주열사 62주기 추모식’에서 추모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김용호 부장은 눈이 빠지는 등의 처참한 모습으로 피습 5시간 만인 10일 새벽 0시 30분에 끝내 숨졌고, 체격이 큰 김봉채 부장은 치료 끝에 다행히 회복했다.

 

여수시 교동에 위치한 민주당 사무실과 인접해 있는 동성극장(현 진남상가주차타워 자리)에서 자유당 측이 민주당의 방송 선전용 스피커를 제거하는 등 방해했고, 이를 고치고 시험방송을 위해 이동 중 괴한들에게 피습을 당한 것이다.

 

당시 타살 현장에는 여수경찰서 형사 2명이 있었다.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자 그해 4월 25일 광주지검 순천지청 강상운 검사는 여수경찰서 사찰계 형사주임 정 모 경위를 체포하고, 30일 여수경찰서장 조광범을 파면했다.

 

조광범 서장은 검찰수사 과정에서 “선거기간 중 깡패를 사들인 것은 자기뿐만 아니라 상부의 지시에 따라서 도내 전 경찰이 똑같이 저지른 행위였다”고 폭로했으며 ““사찰계 형사주임 정 모 경위도 깡패들의 입을 막기 위해 자진해서 2만환을 줬다”는 말까지 털어놨다.

 

경찰서장이 40만환을 주고 여수와 광주에서 깡패를 사들였다”는 소문은 조광범의 시인으로, 사실로 밝혀졌으며, 이듬해 3월 12일 진행된 민주당 중앙당의 추도식에서 장 면 박사는 "김용호 동지의 죽음은 수천 수만의 김용호 동지를 낳게 했으며, 또 앞으로 낳게 할 것“이라는 추도사를 남겼다. 당시 연도에는 수 백명의 인파가 몰려서 김용호 부장의 죽음을 애도했다.

 

▲김양곤 유족대표가 추모사를 하고 있다.

 

이후 3월 10일 치안국에서 범인 정인석(가명)을 체포했으며, 광주고등법원에서 조광범 징역 7년을 비롯해 정 모 형사주임 징역 5년 등 동원됐던 광주 깡패들도 모두 처벌됐다.

 

故 김용호 민주열사는 당시 민주당 정재완 국회의원의 사위였고, 여수일보사 경리부장을 맡고 있었으며, 김봉채 부장은 시의원과 여수일보의 전무였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3·15 마산의거가 3월 15일 시위에 참여한 김주열 학생이 최루탄에 맞아 숨지며 발생한 것으로 보면, 이보다 앞서 9일에 김용호 부장의 희생이 있었던 것이다.

 

1961년 3월 9일 여수 민주당에서 광무동 현 진남초등학교 옆에 위령비를 세웠으나, 이후 도로가 생기면서 위령비는 돌산 국제교육원에 임시로 옮겨졌다.

 

이날 추모식을 주관한 여수 시민감동연구소 한창진 대표는 “자료가 많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는데 유족을 만나고 기록을 찾으면서 3·15 마산의거 김주열 열사에 비해 김용호 열사의 희생이 빛을 보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양곤 유족대표(김용호 열사 5촌 조카)는 추모사에서 “여순사건과 6·25를 겪으면서 나서면 안 된다는 피해의식 때문에 집안에서 당숙님의 희생을 쉬쉬했는데, 시민들이 이런 추모식을 마련해주셔서 유족을 대표해 감사드린다”며 정희성 시인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낭독했다.

 

▲주철현 국회의원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민주당(여수갑) 주철현 국회의원은 “대선 등 여러 사정으로 인해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하며 “앞으로는 민주당에서 추모식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서양희 시민감동연구소 자문위원은 “그간 잊혀지다시피 했던 故 김용호 민주열사의 추모와 역사적 재조명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강조했다.

 

여수지역경제포럼 황선호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추모식에는 주철현 국회의원과 강정희 도의원, 송하진·주종섭·고용진 시의원, 시민 등 50여 명이 참여했으며, 싱어송라이터 서혁신 작곡가의 추모곡 연주와 김영 대표의 우도풍물굿보존회 비나리 연주가 함께했다.

 

‘故 김용호 민주열사 62주기 추모식’은 옛 민주당사 자리인 진남상가주차타워에서 진행 후, 현재 돌산 국제교육원에 세워져 있는 위령비를 참배하면서 마무리됐다. /김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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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서혁신 작곡가의 추모곡 연주(좌)와 김영 대표의 우도풍물굿보존회 비나리 연주가(우).